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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함께 걷는 길

 

장남인 J 씨가 아버지의 변화를 처음 느낀 건, 겨울이 오기 전 그 해 가을이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늘 아파트 현관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시던 분이, 어느 날부터인가 문을 열어줘도 멍하니 앉아 계셨다. “아, 왔냐?” 하시는 목소리엔 익숙한 따뜻함이 있었지만, 그 말에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J 씨는 40대 직장인이다.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며, 초등학생 아들 하나를 키우고 산다. 흔한 도시의 중산층 가정. J씨 아버지는 J씨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살고 계셨고, J씨는 그래도 단단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저녁을 두 번 드시려 하거나, 몇 시간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기 시작하면서 이상함이 일상이 되어갔다.

길을 잃고, 우리도 길을 잃다

결정적인 사건은 어느 저녁이었다. J 씨 아버지가 “마트 좀 갔다 올게” 하고 나가신 뒤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동네 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새벽 두 시,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J 씨는 아버지를 버스 종점에서 발견했다는 말. 두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초기. 진단서 위에 적힌 글자들은 차가웠고, 의사의 말은 머릿속을 둔탁하게 때렸다. 현실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J 씨는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니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의 권유로 치매관련 기간을 소개 받았지만 그리 심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집에서 잘 돌보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점차 모든 일상이 무너져갔다. 번갈아가며 재택근무를 했지만 아버지는 자꾸 외출하려 하고, 가스레인지를 켜놓은 채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J 씨의 초등학생 아들 민재는 “할아버지랑 집에 있는 게 무서워”라고 말했고, 그의 아내는 눈가가 붉어졌다. 매일이 전쟁 같았다. 서로에게 화내고, 아무도 잘못한 건 없는데 모두가 지쳐갔다.

치매안심센터, 그곳에서 다시 만난 희망

J 씨는 우연히 동네 주민센터에서 ‘치매안심센터’ 리플릿을 보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으로 치매관련  어떤 도움이라도 받을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알아보고 어느 날 센터를 찾아갔다. 센터에서 J 씨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괜찮다”라고 위로받았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J 씨 아버지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권했고, 며칠 뒤 4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인생이 바뀌었다. 요양보호사가 일주일에 몇 번씩 집에 오기 시작했고, J 씨 아버지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차량이 데리러 오고, 저녁 5시에 돌아온다. 그곳에선 음악치료도 하고, 인지 놀이도 하며, 무엇보다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의 아내도, J 씨 그제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불안 속에 살던 일상이 조금씩 균형을 되찾았다. J 씨 부부는 회사에도 가족 돌봄 휴가를 신청했고, 직장 상사도 이해를 해주었다. 처음엔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치매라는 말이, 이제는 “J 씨 가족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걷기

J 씨는 초등생인 민재에게도 할아버지의 병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머리가 아프셔. 기억이 잘 안 나고, 그래서 우리가 도와드려야 해.” 아이는 놀랍도록 잘 받아들였다. 오히려 더 자주 할아버지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이건 할아버지 닮았어!”라며 웃곤 했다.

주말에는 J 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공원을 걷는다. 손잡고 걷는 동안, J 씨의 아버지는 옛날 얘기를 꺼내신다. “이 길이 옛날엔 논이었어. 내가 군대 갔다 오고 나서….” 이야기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지만, J 씨는 듣는다. J씨 아버지가 기억하는 세상은 비록 조금씩 희미해지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선명하다.

가끔은 J 씨를 ‘동생’이라 부르시고, 어머니가 살아 계신 줄 아시기도 한다. 그런 날엔 속상하다. J 씨가 누군지 모르는 그 시선이 낯설고, 아프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이름은 몰라도, 마음은 기억하고 있다는 걸. J 씨가 밥을 차리면 기분 좋아하시고, 손을 잡아드리면 꼭 쥐어주신다.

“잘은 모르겠는데… 자꾸 보이니까 좋은 사람인가 보지.”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 날, J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마무리하며 – 기억보다 더 깊은 것

어떤사람이  J씨에게 . “치매 아버지를 모시며 가장 힘든 점이 뭐냐”라고 물어보기 J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처음엔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이 일이 우리 가족을 더 가족답게 만들었다’고 느낍니다.”

J 씨는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아프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게 많단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기억이 사라져도 남는다는 걸 매일 느낀단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족 중에도 치매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 치매안심센터,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 제도…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손길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은 흐려져도 마음은 남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화목한 가족 모습
화목한 가족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