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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를 잊어간다

“넌 누구니?”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멈춰 섰다.
문득 집 안 공기가 바뀌는 걸 느꼈다.
엄마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한참 나를 보던 엄마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생소한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낯설고, 의심스럽고, 약간은 무서워하는 눈빛이었다.

“엄마, 나야. 딸.”

엄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낯익은 단어를 들은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곤 다시 침묵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지나쳐갔다. 마치 복잡한 퍼즐 속에서 조각을 찾지 못한 사람처럼.

엄마가 처음 이상했던 건, 몇 해 전부터였다.
“냉장고 안에 휴대폰을 넣었다”,
“된장을 두 번 샀다”,
“집 앞 마트에서 길을 잃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었다. 피곤해서 그랬겠지, 나이 들어서 깜빡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꼼꼼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던 엄마였기에 이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설마’ 하고 넘겼다. 엄마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잊어버리면서도 밝은 척했다.
그게 더 마음 아팠다.

진단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초기”.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꽉 움켜쥐었다.
‘치매’라는 두 글자가 그렇게 무거운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간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이름은, 엄마의 기억 속에 사라진다

엄마는 점점 나를 ‘딸’로 인식하지 못했다.
때로는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집안 도우미처럼 대하기도 했다.
더는 “우리 딸~”이라 부르지 않았다.
목소리도, 말투도 바뀌지 않았는데, 의미가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부른다.
“엄마, 오늘은 기분 어때?”
“엄마, 밥 먹었어?”
그런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말은 하지만 ‘그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지나간 기억의 조각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찾고, 죽은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기억하며 유치한 말을 건넸다.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딸, 참 예뻤는데 요즘은 바빠서 안 와.”
그 말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바로 옆에 있었는데, 엄마는 내 존재를 과거에서 찾고 있었다.

화도 내고, 울기도 했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왜 나한테만 이걸 다 맡기지?”
“엄마는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지?”
혼잣말로, 때로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
엄마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울분이 터져 나왔다.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식사 도중이었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왜 울어?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엄마가 말했다.
“나, 뭔가 잘못한 것 같아.”
그 한 마디가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엄마는 모른다.
엄마가 잊어가는 그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는지를.

그리고 동시에 알게 되었다.
엄마도 두려운 것이다.
기억이 흐려지는 자신이 낯설고, 가족들이 점점 낯설어지고, 말조차 어눌해지는 자기 자신이 무서운 것이다.
그 불안은 오롯이 엄마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사라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치매는 모든 걸 지워버리는 병이 아니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고, 어떤 감정은 남는다.
엄마는 이름을 잊었어도 내 손을 잡고 웃을 줄 안다.
가끔 내가 손을 잡으면 눈물이 맺힌다.
엄마는 기억하지 못해도 느낀다.
이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제는 ‘기억’이 아니라 ‘느낌’으로 엄마를 대한다.
그날그날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내 마음은 그대로다.
사랑은 기억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믿고 싶다.

오늘도 함께 산다

이젠 매일이 새롭다.
엄마는 어제 했던 말을 오늘 처음 하는 것처럼 반복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작은 반복 속에서 우리가 함께 있음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깨어 있는지 확인한다.
밥을 먹을 때면, 꼭꼭 씹는지 살핀다.
밤이 되면 혹시 혼자 나가진 않을까 문단속을 다시 점검한다.
이 모든 과정은 지치고 고달프지만, 동시에 엄마와 내가 함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치매는 한 사람만의 병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병이고, 상처이고, 동시에 책임이다.
나는 이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게 속에서도, 엄마를 사랑한다.

언젠가, 완전히 나를 잊어도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
엄마가 완전히 나를 잊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날이.
나를 낯선 사람처럼 대하고, 심지어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다.
그날이 두렵고, 그날 이후도 끝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잃어도 사랑은 남는다.
이 말이 상투적인 위로일 수 있지만, 그 위로만이 나를 버티게 한다.

엄마가 나를 잊어도,
나는 엄마를 잊지 않을 것이다.

 

회상의 시간
회상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