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를 처음 주간보호센터에 모시고 간 날, 아버지는 손을 떨며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니?"라는 말이 입술에서 맴돌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빛은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했다. 평생 농사만 짓고 가족과 함께 시골집에서 살던 분에게 ‘센터’라는 공간은 낯설고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주간보호센터의 문을 열자, 친절한 요양보호사들이 아버지를 맞이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의 미소조차 경계하는 듯 보였다. 긴 복도를 걸어가면서 아버지는 몇 번이나 내 손을 꽉 잡으셨다. "집에 가자. 여기는 아니야…"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아버지, 여기서 친구도 사귀고, 운동도 하고, 재밌는 거 많이 해요. 잠깐만 계시다 보면 금방 집에 가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미안함이 가득 차올랐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버지는 식판을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만 계셨다. 다른 어르신들이 식사하며 웃을 때에도 아버지는 젓가락을 들지 않으셨다. 직원이 부드럽게 말을 걸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돌렸다. 그날 오후, 나는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울컥 눈물이 터졌다. “아버지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너무 빨리 결정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저항과 방황
그 후로 몇 주 동안 아버지는 센터에 가기 전마다 발을 동동 굴렀다. "안 간다. 나 집에 있을 거다!" 나는 매번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낯선 곳에 가는 불안감만은 몸이 기억하는 듯했다. 센터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문 옆에 앉아 나만 기다리셨다. 다른 어르신들이 함께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에도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고향 집 마당을 떠올리셨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내 집이 그립다… 여기선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보호사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을 때, 나는 직장에서 서류를 보다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를 계속 집에만 두면 더 빨리 기억을 잃고 몸도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변화의 시작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미술 치료 시간에 아버지가 연필을 들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종이에 "옛날 집을 그려보세요"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어린 시절 살던 초가집을 그렸다. "아버지, 잘 그리셨네요." 칭찬을 듣자, 아버지는 오랜만에 작은 미소를 지으셨다.
다음 주에는 음악 치료가 있었다. 옛날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자, 아버지가 갑자기 따라 부르셨다. "세월아~ 네월아~ 가지 말아라~" 다른 어르신들도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센터에 울려 퍼졌고, 나는 그날 퇴근길에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가 조금씩 이곳을 받아들이고 계시는구나…"
새로운 친구들
몇 달이 지나자, 아버지는 센터에서 친구를 사귀셨다. 옆자리의 김 노인과 함께 장기을 두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화단에서 꽃을 가꾸는 활동도 즐기셨다. "내가 옛날에 농사 좀 지어봤거든. 이 꽃은 이렇게 심어야지." 아버지는 다른 어르신들에게 농사 이야기를 해주며 활짝 웃으셨다.
식사 시간에도 이제는 스스로 젓가락을 들고 "이 반찬 맛있네"라고 말씀하셨다. 보호사 선생님은 "이제는 아버님이 저희에게 먼저 인사도 잘하세요"라며 웃으셨다.
마음의 변화
어느 날,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엔 여기 오는 게 너무 싫었는데… 사람들이 다 착하고 좋네. 집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의 짐이 조금 내려갔다. 아버지가 완전히 적응하는 데 몇 개월이 걸렸지만, 결국 아버지는 주간보호센터를 ‘두 번째 집’으로 받아들이셨다.
지금도 아버지는 매일 아침 "오늘은 무슨 놀이할까?"라며 기대감을 보이신다. 집에 돌아오면 "오늘 노래 부르고 친구들이랑 웃었어"라고 말씀하신다. 예전처럼 불안해하시지 않고, 오히려 센터에 가는 날을 기다리신다.
간병하는 가족의 마음
간병하는 가족으로서 나는 아버지를 센터에 보내는 것이 처음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내가 아버지를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버지가 센터에서 더 많은 자극을 받고, 사회적인 교류를 하면서 기억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아버지를 믿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주간보호센터는 치매 가족에게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과 환자 모두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아버지가 거기서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적응은 사랑으로 완성된다
치매 어르신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두려움과 저항, 눈물과 방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봐 주면, 결국 어르신은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아버지는 이제 주간보호센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도 즐거웠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한다. "적응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으로 완성된다."
이 이야기는 10년간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겪은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을 빌려 각색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