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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나는 마음

memo1482 2025. 8. 12. 16:02

치매 남편과 함께한 여정

나는 올해 예순다섯이다. 지금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아침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있으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면서도 아릿하다.

치매. 그 단어 하나가 우리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지 벌써 5년째다.

남편이 처음 이상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단순한 건망증이라 생각했다. 리모컨을 냉장고에 넣어두거나, 나를 ‘누구냐’고 물을 때도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넘겼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기억 너머의 사람

정식 진단은 알츠하이머였다. 의사의 말이 또렷하게 들리는데, 동시에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초기지만 진행이 빠를 수도 있습니다. 보호자 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그 순간부터 나는 간병인이자 아내, 상담자이자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다.

남편은 점점 내가 누구인지 헷갈려했다. 가끔은 나를 ‘누나’라 부르고, 어떤 날은 ‘옛날에 알던 사람’이라며 어색해했다. 나는 애써 웃었지만, 눈물이 자꾸 나도 모르게 흘렀다.

부부로 살아온 38년. 같이 늙어가기로 약속했던 그 사람이, 나를 점점 모르는 사람으로 대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가끔 아주 짧은 순간… 남편이 나를 ‘여보’라 부르며 예전처럼 웃을 때였다. 그 반가움은 너무도 짧고, 그 짧음은 가슴을 찢는 고통이었다.

끝없는 하루, 점점 무너지는 마음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밤에는 혹시 혼자 나가진 않을까 문을 잠가야 했다. 목욕을 시킬 땐 “왜 나를 때리려 하느냐”며 소리를 질렀고, 약을 먹이려 하면 “독약을 타려는 거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렇게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친구도, 가족도, 나 자신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예전엔 소일거리로 하던 꽃꽂이도, 책 읽기도 모두 의미를 잃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웃을 수 없다는 게 가장 괴로웠다.

밤에 남편이 잠든 틈에 거실에서 혼자 울곤 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건 끝이 없는 싸움이야… 내가 먼저 무너지고 있어…’

그때부터 가슴이 무거워지고, 심장은 자주 두근거렸고, 웃음은 사라졌다. 우울감은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나를 삼켜가고 있었다.

작은 변화의 시작,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그러던 어느 날,  보건소를 통해 남편이 주간보호센터에 등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컸던 나는 처음엔 주저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남편이 센터에 다니기 시작한 첫날, 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남편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죄책감’과 ‘잠깐이라도 혼자 있게 된 자유’가 뒤섞여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복지사 선생님이 건네준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보호자님도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함께하실 수 있어요.”

그 말은 눈물보다 따뜻했다. 처음으로 누군가 나의 감정을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센터에서는 남편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나 같은 보호자를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 심리상담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나도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을 열고, 조금씩 빛이 들다

처음엔 말없이 앉아 있던 나였다. 하지만 상담을 몇 번 거치며, 나는 내 안의 고통을 꺼낼 수 있었다.

“남편이 나를 모를 때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어요.”

그 말에 상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투명한 존재가 아니에요. 누구보다 많은 것을 견디고 있는 강한 분이세요.”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 안쓰럽고 애처로워 눈물이 터졌다. 남편이 치매라는 병과 싸우는 동안, 나도 또 다른 병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과 보호자 교육을 통해 나는 치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제 나는 남편이 나를 ‘누구냐’고 물어도 덜 아프다. 그건 남편의 병이 말하는 거지, 남편 마음이 그런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의 행복, 내일의 희망

요즘 남편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것을 즐거워한다. 같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노래교실과 색칠 공부를 기다리며 아침마다 설렌다는 듯한 얼굴을 보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매일 조금씩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센터 복지사 및 담당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도 자주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내게 단순한 ‘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내 감정을 함께 나누는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나는 이제 다시 꽃을 꽂는다. 작은 난을 돌보며, 남편과 함께한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어떤 날은, 남편이 내 손을 가만히 잡고 오래도록 말없이 바라본다. 그 눈빛 속에는 아마도 알 수 없는 마음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알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치매는 ‘끝’을 의미하는 병이 아니다. 기억은 사라질지 몰라도, 사랑은 남는다. 지금 나는, 남편과 함께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배우고 있다.

물론 여전히 무섭고 외로운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주간보호센터, 담당요양보호사, 복지사, 심리상담 선생님 분들… 그리고 나 자신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남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직 함께야.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자.”

*이 이야기는 10년간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치매어르신 보호자분들의 사연을 듣고 인상 깊었든 스토리를

에세이 형식으로 각색하여 올리는 내용입니다.  

 

 

산책중인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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