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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엄마의 이상함을 눈치챈 건 3년 전 겨울이었다. 눈이 내리던 저녁, 엄마는 평소처럼 식탁에 저녁을 차려주셨다. 그런데 반찬을 놓으시다 말고 갑자기 나를 향해 물으셨다.
“너… 누구니?”
나는 그 말을 농담이라 생각했다. 순간 웃어넘겼지만 엄마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다. 어린아이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은, 내가 평생 알던 따뜻한 엄마가 아니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치매’라는 단어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초기 단계였다. 의사는 아직 치료제는 없지만 약물과 꾸준한 관리로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엄마가 나를 잊는 날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치매 초기에는 단순한 기억력 저하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엄마는 가끔 냉장고에 밥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신발을 넣기도 했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쥔 채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당황하거나, 집 앞 마트에서 길을 잃어 경찰이 모셔다 주신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으며 "괜찮아요, 엄마. 우리 집에 가요."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엄마를 지키겠다고 했지만, 어느 날 거실에서 몰래 우시는 모습을 보았다. 평생 엄마만 바라보던 분이었기에 그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도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달려와 엄마를 돌보았다. ‘간병’이라는 단어가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고, 여행도 갈 수 없었지만, 엄마를 떠날 수는 없었다.
밤마다 엄마가 집을 나가려 해 현관문을 잠가야 했고, 새벽마다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를 달래야 했다. 엄마가 갑자기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마다 심장이 조여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을 만들고, 매일 같이 산책을 나가며 기억을 되찾으려 애썼다.
웃음으로 버티는 가족
치매와 싸우는 일상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나를 잊고, 화를 내고, 이유 없이 울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다시 죄책감에 시달리기를 반복했다. 간병은 체력과 정신을 동시에 소모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 딸… 많이 힘들지? 미안하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나를 완전히 잊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직 엄마의 마음은 내 곁에 있었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사랑은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웃으려 노력했다.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예전 노래를 틀어두고 함께 춤을 추었다. 엄마가 웃을 때마다 나도 따라 웃었고, 아버지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셨다. 웃음은 우리 가족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주말이면 우리는 함께 요리를 했다. 엄마가 예전에 즐겨 만들던 잡채와 김치전을 함께 준비하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다. 엄마는 가끔 양념을 잘못 넣기도 했지만, 함께 부엌에 서 있는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지켜보며 “가족이란 이런 거다”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치매와 함께 사는 법
3년이 지난 지금, 엄마의 기억은 더 많이 사라졌다. 내 이름을 부를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족 사진을 보며 "이 사람 누구야?"라고 물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기억은 사라져도, 엄마가 나를 사랑했던 시간과 마음은 절대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간병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족이라는 건 단순히 함께 웃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힘들 때 서로를 지켜주는 것임을. 치매는 우리가 엄마를 버려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더 깊이 사랑해야 하는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도 우리 가족을 보며 "진짜 사랑이 뭔지 배운다"고 말하곤 했다.
가끔 엄마가 해맑게 웃을 때가 있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우리 딸 예쁘다”라고 말할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딸이 된다. 엄마의 말 한마디, 웃음 한 번이 내 하루를 지탱하게 만든다.
우리는 새로운 생활 패턴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과 가벼운 산책을 하고, 두뇌 활동을 돕는 게임을 함께 한다. 음악 치료와 미술 치료도 시도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애쓴다. 엄마가 좋아하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잠시나마 표정이 밝아지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잃어버린 감정을 표현할 때도 있다.
간병은 쉽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를 지키며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엄마가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마음 하나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치매는 가족 모두에게 시련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배운다. 어쩌면 엄마가 내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선물은 ‘기억’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엄마가 나를 잊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집 근처 공원을 걷는다. 엄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지라도, 나는 엄마가 누구인지 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고, 여전히 함께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엄마가 웃으며 내 손을 꼭 쥘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느낀다.
혹시 누군가 치매 가족을 돌보며 지치고 힘들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하는 그 사랑이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결국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엄마를 돌보며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때로는 눈물이 나고, 때로는 지칠 때도 있겠지만, 엄마와 함께 웃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겠다. 우리 가족은 치매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더 단단해졌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길 끝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 웃으며 말할 것이다. “고생 많았어, 사랑해.”
이 이야기는 요양보호사 10년간 근무하며, 어느 보호자분이 들려준 내용을 에세이 형식을 빌려 각색한 이야기 입니다.